불쑥불쑥
도토리묵 이야기 본문
도토리묵은 도토리녹말을 물에 풀어 끓인 다음 굳힌 음식이다. 우리 민족은 석기시대부터 도토리를 식용하여 왔다. 그것은 이 시대의 유적지인 서울 강동구 암사동,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등에서 모두 야생도토리가 나오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일찍부터 식용되어온 도토리는 구황 식으로도 각광을 받았다. 『고려사』에는 충선왕이 흉년이 들자 백성을 생각하여 반찬의 수를 줄이고 도토리를 맛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도토리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한층 더 구황 식으로 중요시되었다. 숙종은 을해 년에 심한 흉년이 들자 몸소 도토리 20말을 진휼(흉년)을 당하여 가난한 백성을 도와주기 위하여 보내면서 흉년에는 도토리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한다. 조선 후기에 쓰인 『산림경제』·『목민심서』 등에도 도토리가 한결같이 구황식품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도토리는 구황 식으로 발전해오는 한편, 별식으로도 발전해왔으니 그중의 하나가 도토리묵이다. 도토리묵을 만들 때는, 먼저 도토리를 바싹 말려 절구에 찧어 껍질을 까불어 버리고 더운물에 담가 떫은맛이 없어질 때까지 3∼4일 동안 자주 물을 갈아 가며 우려낸다. 그 다음에 곱게 갈아 고운체에 받쳐 앙금을 가라앉혀 도토리녹말을 만든다. 도토리 녹말을 물에 풀어 하루 밤 정도 두었다가, 고운 체에 걸러 두꺼운 솥에 붓고 충분히 저은 다음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인다. 색깔이 투명해지면 소금과 식용유를 넣어 고루 저으면서 다시 한 번 끓여 뜸을 들인 다음 적당한 크기의 용기에 쑨 묵을 쏟아 식힌다. 완전히 식으면 묵을 꺼내 껍질을 벗기고 썰어서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다. 도토리묵은 약간 떫으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나 식욕을 돋운다. 칼로리가 낮아 비만증이 있는 사람에게 아주 적합한 음식이다. 그러나 탄닌 성분이 있으므로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민백』
도토리가 식량자원으로 이용된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어 신석기시대에 이미 도토리를 사람들이 먹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대 주거지에서 도토리가 발견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74년 서울 암사동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 도토리가 20개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최근까지 농촌·산촌에서는 비상식량으로 도토리를 저장하기도 하였다. 강원도 삼척지방에서는 도토리묵을 밤묵이라고도 하기도 한다
한편 산속의 열매들은 흉년 때 비상식품으로 매우 중요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도토리와 밤은 대표적인 산 속의 식품이자 구황식품이었다. 충선왕이 흉년 때의 백성들을 생각하여 도토리를 맛보았다는 일화는 도토리가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달충은 산촌잡영([동문선] 권11)에서 익은 도토리는 삶아서 밥 대신 한다고 하여 농촌이나 산촌 사람들에게 도토리가 얼마나 중요한 식량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윤여형의 상율가([동문서] 권7)는 토지탈점과 중첩된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에 홀로 남은 노인들이 차마 몸을 구덩이에 던져 죽을 수 없어 새벽에 마른 밥을 싸가지고 산에 올라 들짐승과 경쟁하며 도토리와 밤을 줍는 참혹한 농촌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고려시기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으니, 흉년으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어야 할 때 산속의 밤과 도토리 등은 시기를 막론하고 더할 나위없는 훌륭한 비상식품이었다.
도토리묵을 만들 때는, 먼저 도토리를 바싹 말려 절구에 찧어 껍질을 까불어 버리고 더운물에 담가 떫은맛이 없어질 때까지 3∼4일 동안 자주 물을 갈아 가며 우려낸다. 그 다음에 곱게 갈아 고운 체에 받쳐 앙금을 가라앉혀 도토리녹말을 만든다. 도토리 녹말을 물에 풀어 하루 밤 정도 두었다가, 고운 체에 걸러 두꺼운 솥에 붓고 충분히 저은 다음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인다. 색깔이 투명해지면 소금과 식용유를 넣어 고루 저으면서 다시 한 번 끓여 뜸을 들인 다음 적당한 크기의 용기에 쑨 묵을 쏟아 식힌다. 완전히 식으면 묵을 꺼내 껍질을 벗기고 썰어서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다.
도토리 열매를 맺는 상수리나무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선조가 임진왜란이 터지는 바람에 북쪽으로 몽진(蒙塵)을 갔는데 당시 북녘에서는 상수리나무를 토리나무라 했다고 한다. 난리 중에 먹을거리가 있을 리 없었다. 임금 일행이 묵게 된 마을 사람들이 황송한 마음에 도토리로 묵을 쑤어서 그쪽 말로 토리묵을 수라상에 올렸다. 배고플 때 먹으니까 맛이 있어서 나중에 난리가 끝난 뒤에도 선조 임금이 옛날 고생을 잊지 않을 겸, “토리묵을 상에 올려라”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토리묵이 수라상에 자주 오르는 귀한 음식이 된 것이다. 수라상에 올린다(上)해서 도토리를 상수라라 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상수리가 됐다는 설이 있다.
도토리묵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렸던 한국전쟁 기간 동안 많이 먹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도토리묵은 빈곤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메밀묵 등의 다른 묵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수요가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사이 도토리묵은 건강식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도토리묵 같은 음식은 원래 가난한 시절의 가난함의 산물이다. 영양가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시대의 역설’ 로 지금과 같은 포식시대에는 오히려 웰빙요리가 된 것이다.
도토리로 묵을 해먹으면 수분의 함량이 많고 포만감을 줄뿐만 아니라 반대로 칼로리가 아주 낮아서 최고의 다이어트 음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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