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불쑥
식혜의 유래와 이야기 본문
밥을 엿기름으로 삭혀서 감미가 나도록 만든 음료이다. 식혜를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삼구시대까지로 올라간다고 추정한다.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집』에 보이는 ‘행당맥락(杏餳麥酪)’의 ‘낙(酪)’을 식혜나 감주무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시대 영조 때의 문헌인 『소문사설 謏聞事說』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생선식해에서 식혜가 분화되어 나오는 시기를 18세기 경으로 보기도 한다. 식혜가 생선+곡물+소금+향신료에서 생선+곡물+엿기름+향신료로, 다시 곡물+엿기름으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천과정의 대표적 사례가 안동식혜이다. 안동식혜는 곡물+엿기름+생강+무+향신료(고추)로 만든 음료인데 김치의 형태와 흡사하다.
식혜를 만드는 법은 먼저 엿기름을 알맞게 계량하여 따뜻한 물에 껍질째 넣고 빨아서 고운 체에 밭친 다음 그 물을 가만히 가라앉힌다(엿기름은 보리에 싹을 틔운 것으로 가을보리를 물에 담가 싹이 뾰족하게 나면 시루에 안쳐 물을 가끔씩 주면서 기른다.
싹이 보리길이의 두 배쯤 자랐을 때 바싹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맷돌에 갈아서 사용한다.). 싸라기가 없는 좋은 쌀을 택하여 매우 된밥을 지어 사기항아리와 같은 금속물이 아닌 그릇에 담는다. 사기항아리에 엿기름의 웃물만을 가만히 따라서 붓고 온도를 60∼70℃로 4∼5시간 유지시켜 밥을 삭힌다. 이 때 온도가 낮으면 밥이 쉬어 식혜의 맛이 시어져서 실패한다. 또한 온도가 너무 높아도 당화가 잘 안 된다. 뜨거운 물 가운데에 항아리를 놓아 간접적으로 보온하는 방법이나 따끈한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보온하는 방법을 쓰면 좋다. 4시간 정도 지난 뒤에 뚜껑을 열어보아 밥알이 동동 떠 있으면 밥알을 조리로 건져서 찬물에 헹구어 다른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식혜물은 한소끔 끓이면서 설탕을 알맞게 탄다. 끓이는 동안 떠오르는 거품은 숟가락으로 살짝살짝 걷어내야 식혜물이 맑고 정하다.
쌀은 멥쌀이나 찹쌀을 쓴다. 멥쌀로 만든 것이 밥알이 더 잘 뜬다. 찹쌀은 밥알이 뭉그러져서 지저분하게 보이고 감촉도 나쁘다. 감미(단 맛)는 찹쌀로 만든 것이 조금 더 강하다. 식혜물은 몇 가지 가미를 하여 맛과 모양을 좋게 하기도 한다. 식혜물을 끓일 때에 생강 몇 쪽을 넣거나 따로 생강물을 달여서 섞고, 유자를 통으로 혹은 서너조각을 내어 식혜물에 담가 향미가 배어들도록 한다. 또는 식혜에 유자청을 섞고 유자껍질을 곱게 채 썰어 띄우기도 한다. 흰 밥풀과 노란 유자채가 어우러져 예쁘고 향기도 있다. 석류를 보석처럼 몇 알 띄우고 잣을 띄우기도 한다. 식혜는 추동간에 마시는 것이 제철이었다. 최근에는 계절이 없이 마시고 있으며, 설탕 맛이 지나쳐 맥아당의 맛이 적은 음료가 되고 있다. 식혜는 흔히 감주와 혼용된다.
밥알이 삭아서 동동 떠오르면 밥알을 따로 건져놓고 끓여서 차게 식혀 밥알을 띄워 마시는 것이 식혜이고, 감주는 밥알이 다 삭아서 노르스름해지고 끈끈해지며 단맛이 날 때에 끓여서 단맛을 진하게 하여 따끈하게 마시는 것이다.
식혜는 단술 또는 감주라고도 부르는데 밥알을 띄워서 먹는 것은 식혜, 밥알을 걸러내서 먹는 것을 감주라고 한다. 식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다른 음식을 아무리 잘 차렸어도 식혜를 그르치면 다른 음식도 점수가 깎인다. 일종의 후식인 셈인 식혜는 달착지근 입에 착 달라붙으며 맛이 있어야 식사가 다 맛있었다는 생각을 안겨주는 음식의 마무리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식혜치레 하다가 제사 못 지낸다’는 말이 나왔을까. 성격이 변덕스러워 냄비같은 사람을 두고 ‘여름 식혜 맛’이라고 한다. 식혜는 그만큼 정성과 손맛이 따라야 하는 한식이다.
식혜는 중국 주나라 시대의 예기에 나오는 상류계급에서 마시는 청량음료의 하나인 ‘감주’의 윗물인 ‘단술’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문헌에는 1940년 경의 ‘유문사설’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식헤의 맛은 엿기름가루에 달려있는데 시의전서에는 엿기름 거르는 법을 소개하면서 보리로 엿기름을 만들면 좋다고 했다. 엿기름에는 당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많이 있어서 당화작용이 일어나고 생성된 말토오스는 식혜의 독특한 맛을 낸다. 아밀라제는 식후 소화를 돕는 데 또한 좋은 역할을 한다. 식혜의 이 단맛은 설탕의 강렬하고 순간적인 단맛과는 그 성격이 달라 은근하고 깊은 단맛이 난다.
일종의 후식인 이 단맛의 음료는 특히 명절 등 기름지고 풍성한 음식을 많이 먹었을 때 먹으면 체증을 해소하는 효능을 가졌다. 소화제가 귀하던 시절에 명절 음식에의 유혹은 과식을 불렀을 것이고 후식으로 식혜를 내오는 것은 음식이 곧 약이라는 약식동원 사상을 입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식혜는 지방마다 종류가 달라서 안동 식혜 진주 식혜, 강원도 식혜, 경상도 식혜 등이 있다. 안동 식혜에는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드는 둥 지방마다 특색이 다른데 이중 특이한 것은 가자미 식혜이다. 가자미 식혜는 밥알뿐만이 아니라 가자미도 같이 삭혀서 만든 함경도 고유의 음식으로 일종의 젓갈로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도루묵식혜, 황해도연안식혜, 간원도 북어식혜 등이 있다 이런 류의 식혜들은 주로 해안지방에서 발달하여 밥과 계절에 맞는 생선을 토막 내서 삭힌 것으로 후식이라기보다는 반찬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혹자는 밥알만을 삭혀 만든 음료용 식혜만 식혜라고 표기하고 밥알 외에도 생선을 삭혀 함께 만든 것은 ‘식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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